[가족돌봄휴직 요건 및 필요서류] 

교육공무원 가족돌봄휴직 요건

 

2021년 미래학교로 옮기고 난 나의 삶은 워라밸의 최고에서 워커홀릭으로 변해버렸다.

교사라는 직종에 종사하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늘 갈팡질팡하던 나의 삶에 열정을 한 스푼만 넣으려다 한 국자를 넣어버린듯이 미친듯이 달렸다. 

같이 학교를 세운 (4명이 학교를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명의 선생님들과는 교직 어디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경험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모든 게 미지였기 때문에 이상을 그리며 새로운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라면 강원도도 금산도 부산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으며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10시 퇴근은 아무렇지 않았다. (이것도 시간이 모자라 학교를 나가라는 당직기사님의 성화에 주차장에서 한 시간을 이야기하다 모자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전화를 하면서 갔던 기억이 난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에피소드가 999개 정도는 되기 때문에 잠시 접어두고..

나의 이런 삶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그때에는 잘 알지 못했다. 

나에게도 어쩌면 나와 사는 가족에게도 조금씩 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다 2022년 5월 경 엄마가 쓰러지셨다. 나의 인생에서 엄마는 늘 밝고 건강한 나의 NO.1 롤 모델이었다. 

엄마의 병명은 우울증과 공황장애였다. 갑자기 나는 한 대를 맞은 듯 모든 것을 내려놔야 했다.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것 같던 학교에 일주일 병가를 내고 엄마 곁을 지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보였다.  

그래도 나는 망설였다. 

'이제서야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내가 없으면 학교가 안 돌아갈 것 같은데, ..' 

지금 멈추면 나한테 주어진 기회들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Plan A를 알면서도 B,C,D 의 대안들을 제안했다. 사촌이모가 집에 오셔서 엄마를 돌봐주시기도 하고, 아시는 집사님, 간병해주시는 분, 엄마 아는 분의 남편인 한의사 선생님, 그렇게 나와 아빠말고 모두가 애를 썼지만 엄마는 나아지지 않으셨다.

 

그 사이 나는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예비남편과 함께 살며 주말마다 함께 본가에 가서 엄마와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 나아진 것이 없다.

 

또,

아빠도 3번째 암수술을 받게 되셨다.

 

본가에서 돌아오던 어느 주말, 이제껏 받은 것을 네가 갚아드릴 때라고 예비 남편이 말을 했고 나는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2024년 가족돌봄휴직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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